소년이 온다
부모님께 나를 들려드리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를 보여주는 일은 조금 덜 부끄러운 일이다. 나를 마지막으로 보여드렸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마도 CCKOREA 활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자취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원룸을 벗어난 아들의 집을 보러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1년 반 전에 차를 샀을 땐 ‘언제 운전하는 아들을 보나 했는데…’ 하시던 부모님. 자취방에 살 땐 ‘아이 이놈아. 그래도 엄마아빠가 올라와서 하룻밤 자고 갈 방 하나는 있어야지 이놈아’ 하시던 부모님. 아마 이번엔 내심 ‘언제 아파트에 사는 아들을 보나 했는데 허허 좋구만’ 하시지 않을까…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아파트에 갔으니 이제 아가씨가 생기려면 얼른 수염을 잘라야…!’ ^^ 만족을 모르시는 부모님.
아버지가 당신에 대해 직접 보여주려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버지를 보게 된 순간 중 하나는 본가 창고방 한켠에 꽂혀있던 김대중 자서전이었겠다. 책을 읽는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신 적 없는(?) 아버지가 직접 꽂아 둔 책은 그만큼이나 특별해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나를 보여드리고 싶어 일산칼국수가 목적지인척 라비브북스에 들렀다. 평생 당신들의 품자락 속 소년인 아들이 제법 커버린 뒤 품자락 바깥에서 찾은 좋아하는 공간에 모시고 가는 일은 나를 들려드리는 일보단 조금 덜 부끄러운 일이니까.
여느 때처럼 사고 싶었던 책을 두권 들고 자리에 앉으니 “여긴 책도 파는 곳인가보다” 하는 어머니의 말씀. 그런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꽂혀있는 ‘소년이 온다’가 보인다. 아. “아이! 이런거 사줘도 안봐야. 얼른 다시 환불해라!” 하시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책을 집어서 가져왔다. “5.18 이야기야. 엄청 재밌고 잘 쓴 소설인데 집에서 심심할 때 한번 읽어봐요”. 아버지께서 물끄러미 책을 바라보더니 딱 한마디 하신다. “한강 나도 알아. 그 여자 소설가 아니냐”. 그래도 책이 괜찮으신가보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아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일도 하고 그러냐~” 라며 이야기를 나누다 커피를 다 마신 뒤 자리를 정리했다. 책 세 권을 함께 챙기려니 아버지께서 얼른 소년이 온다를 뺏어가신다. “아이 니가 사줬으면 내가 들어야제”. 하고 허허 기분좋게 웃으며 나가시는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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